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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Coffee

History of Coffee (커피의 역사)

History of Coffee

 

Origin of Coffee

 

 

커피는 생물학적인 증거로 볼 때 이디오피아의 산악지대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커피의 원산지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아라비카종(Coffee Arabica)은 동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 로부스타종(Coffee Robusta)은 서아프리카의 콩고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춤추는 염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약 AD 500년경에, 에티오피아에 사는 칼디(Kaldi 고대 아랍어로는 뜨겁다는 뜻)라는 양치기 소년은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난 뒤 흥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열매를 직접 먹어본 칼디도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칼디는 이 사실을 마을에 있는 한 수도승에게 알렸고, 이를 신기하게 여긴 수도승은 열매를 가져다 동료 수도승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날 밤, 열매를 먹은 수도승들은 이 열매에 잠을 이겨내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소문은 금방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고, 그 뒤로 커피열매는 잠을 극복하게 해주는 신비의 열매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커피의 처음 쓰임새는 기도 중에 잠이 들지 않도록 하는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커피의 발견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부분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전설이거나 근대 유럽지역에 커피가 보급되면서 지어진 이야기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기원전부터 아프리카 동부 일대에서 커피열매가 존재했으며 커피나무의 원산지가 이디오피아임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From Africa to Arabia (A.D525 ~ A.D1500)

 

커피 전파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많은 역사가들은 약 6세기를 전후하여 이디오피아가 아라비아 남부 예멘지방을 침략하면서 아라비아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커피가 전파된 이유는 같은 이슬람 권인 사라센 제국의 영향권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수도승들이 고행을 극복하고 활기를 주는 신비한 약으로만 사용되던 커피는, 이슬람교 사원의 관리하에 포교활동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슬람교 세력이 커짐에 따라 한정된 지역에서 자라던 야생상태의 커피도 아라비아의 예멘에서 인간에 의해 처음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이슬람이 전파되는 곳에는 커피도 같이 전파되었고 그 결과, 북아프리카, 지중해 동부, 그리고 아시아의 인도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들은 1000년경에 커피를 졸음을 방지해 주는 의미를 가진 Gahwah(와인의 의미)라고 명명하며 원두를 끊여 먹기 시작했다. 커피종자의 외부 유출을 금기시하던 사라센 제국의 엄격한 관리하에 처음에는 날것으로 먹던 커피를 차츰 종자가 발아하지 못하도록 굽거나 쪄서 수출하거나 운반하였다. 이로 인해 가공법이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되었고, 훗날 약용에 머물던 커피를 모든 사람들이 음료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라센 제국이 쇠퇴하면서 11세기경 커피는 이슬람교 사원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커피가 약용이나 종교의식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커피가 음료로 애용된 것은 이슬람 문화권에 의해서이다. 이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을 금했기 때문으로 커피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13세기까지 종교적으로 마시던 커피가 14세기경 중동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현재의 터키)에 커피가 소개되면서 비로소 원두를 볶은 후에 추출해서 마시는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음료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커피라는 용어 자체도 터키어 Kahve를 거쳐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커피를 ' 이슬람의 와인'이라고도 칭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 커피가 소개되었고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Kiva Han이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열게 되었다.

Coffee at Europe (A.D 1500 ~ A.D 1700)

 

 

커피가 기독교권에 처음 소개된 것은 십자군 전쟁 때였다. 사라센 제국이 분열되어 있을 무렵,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동안 유럽인들은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세계로 8차례의 대원정을 보냈다. 이때 십자군에 지원한 각 유럽지역의 사람들은 이슬람 지역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1615년 베니스 상인들에 의해서 유럽에 소개될 때까지 그것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슬람 문화인 커피가 유행하는 세태에 종교적인 교리를 내세워 로마 교황인 클레멘트 8세(Pope Clement Ⅷ)에게 커피를 악마의 음료로 칭하며 커피 음용을 금지시켜 줄 것을 탄원했다. 그러나, 교황은 뜻밖에도 향기로운 맛과 향에 감탄하며 커피에 세례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커피가 유럽에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초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이탈리아에 문을 연 이래로 영국에 많은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런던에만 거의 2,000여 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17세기 후반 영국의 왕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가 혁명의 온상'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 커피하우스를 폐쇄한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하지만 포고령은 11일 만에 일반 대중의 반대에 부딪쳐 발효되기도 전에 철회되었다. 이렇듯 커피는 이교도의 음료라는 종교적 박해와 커피하우스에 오랜 시간 남편을 빼앗긴 부인들의 불만 등에도 불구하고 대중 속으로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었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하우스가 범람하고 커피소비량이 급증하자 공급부족으로 품귀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슬람 교권은 커피의 묘목과 종자의 유출을 금지시켜서 아라비아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커피나무가 자라기에 유럽의 땅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6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바바부단(Baba Budan)이라는 인도인이 성지 순례를 마치고 7알의 커피 씨앗을 인도로 빼내와 재배하는데 성공하였고, 인도 남부 마이소르(Mysore)지방의 산에 심었다. 훗날 바바부단이라고 명명된 언덕에서 커피나무가 번성하게 되었으며 인도와 무역하던 유럽 식민지국가들에게까지 재배가 확대되었다.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커피의 상품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커피 거래상들은 커피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이 중 제일 먼저 주도권을 잡은 나라가 네덜란드였다. 1616년 네델란드는 예맨의 모카(Mocha)에서 커피나무를 훔쳐 암스테르담 식물원에 재배하였다. 당시 막강한 무역 강국이던 네덜란드는 동인도사업을 벌이던 인도 지역에서 커피농장을 인수해서 직접 경영하였고, 유럽 제국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커피사업에 투자를 하였다. 1696년에는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커피농장을 확대하고, 이후 수마트라, 셀레베스, 티모르 지역에도 대규모 커피플랜테이션을 조성했다. 자체 공급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커피의 상품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시장을 넓혀 나갔다.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커피나무를 갖다 바치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는데,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커피 맛에 반해 이들로부터 왕실에서 마실 전용커피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상인들의 커피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사교장 겸 지식인의 토론장이던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유럽에 바야흐로 커피의 시대가 도래하기에 이르렀다.

 

To America Continent (A.D 1713 ~ A.D 1723)

 

 

1713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암스테르담 시장으로부터 유트레히트 조약 체결 기념으로 선물 받은 커피 묘목을 파리 왕립 식물원에 심게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령 식민지에 옮겨 심으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몇 년 뒤 1723년, 커피 역사에 남을 일대 사건이 벌어졌는데,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 섬(Martinique Island)에도 커피나무가 심어졌다. 그 주인공은 카리브 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마르띠니크 섬의 젊은 해군장교 끌리외 (Gabriel Mathieu de Clieu) 였다. 당시 파리에 휴가차 머물고 있던 그는 커피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국왕에게 커피 나무를 이식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하게 되자, 한밤중에 식물원 벽을 넘어 온실에 잠입해서 커피나무의 싹을 가지고 나오는 일대 모험을 감행하였다.

커피 씨를 손에 넣은 끌리외는 마르띠니크로 떠나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믿었지만, 그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에 해적들을 만나 배가 나포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폭풍우 속에서 커피 묘목과 함께 가라앉을 뻔하기도 하였다. 항해 끝 무렵에는 마실 물이 거의 다 떨어져 배급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끌리외는 그가 배급 받은 물의 절반을 커피 싹에 쏟아 부어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마르띠니크 섬에 도착한 그는 엄중한 경비 속에 커피 싹을 정성스럽게 길렀고, 그 결과 무성하게 자라나 50년 만에 약 1,920만 그루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 묘목들이 바로 세계 커피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라틴아메리카 커피역사의 시초가 된다.

 

Origin Brazil Coffee (A.D 1727 ~ A.D 1800)

 

 

1727년 당시 브라질은 커피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지만, 커피 씨앗을 손에 넣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브라질 최고 통치자는 고심 끝에, 팔레타(Francisco de Melo Palheta) 대령을 커피가 재배되던 프랑스와 네덜란드 식민지들이 있던 가이아나로 파견하였는데, 표면상의 명목은 국경분쟁을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가이아나에 도착한 대령은 요새와도 같은 커피농장에서 직접 커피묘목을 훔쳐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잘생긴 외모와 몸에 밴 매너를 이용하여 행정관의 아내에게 접근하는 꾀를 내었다. 계획은 적중하여 그녀는 저녁 만찬 장에서 연정의 표시로 남몰래 커피 싹이 둘러진 꽃다발을 건넸고, 대령은 이를 무사히 브라질로 들여오는데 성공하였다.

이 연약한 싹이 자라나 오늘날 세계 제1의 커피대국인 된 브라질의 커피 역사 시초가 된 것이다. 1800년경에는 커피수확량이 엄청나게 늘어나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커피가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전 세계인의 음료, 커피

 

19세기 중반 무렵에 전세계적으로 커피 병충해가 돌면서 한때 커피산업 자체가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의 서남 해안지대에서 재배되었던 로부스타종이 새로 이식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품종개량과 농약보급 및 관련 기술발전을 통해 그전보다 더욱 성장해 이제는 전세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보편적인 음료가 되었다. 그러나 커피의 원산지인 이디오피아가 위치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커피를 생산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베트남과 중국 유난지역에 이르기까지 커피나무는 곳곳에 심어져 적도를 중심으로 커피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커피를 재배하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약 70여 개국 이상이며 직간접적으로 커피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만 2,500만 명에 달한다. 또한, 가격 기준으로 볼 때, 천연자원 가운데 원유 다음으로 거래 규모가 큰 품목이며 전 세계적으로 한 해 4천억 잔 이상이 소비되고 있다.

오늘날, 최대 커피 소비국인 미국은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이후 차를 대신해 커피가 보편화되었고 세계 커피 생산량의 2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고종황제가 1895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되었고 고종의 시중을 들던 손탁 여사(독일인)가 러시아 공사관 근처에 정동구락부라는 한국 최초의 커피점을 열었다. 커피의 보급은 한국전쟁 후에 미군 PX에서 나온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한국사회에 보편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기형적으로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우선적으로 거대해진 후 에스프레소 커피로 시장이 변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Thinking About Coffee (DuDu)

 

커피라는 기호 식품은 과거에는 상류층만의 전유물이었으나 현재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식품이 되어 참 행복한 시절에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이슬람 문화권 에서는 종교적인 색깔이 강했다면 카톨릭 문화권으로 이동하면서 전세계가 향유하는 음료, 커피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현재는 마케팅의 왕국, Starbucks로 대변되는 미국에서 최대 커피 판매처가 되었으니 과거의 커피사에 남아있는 인물들이 이를 알게 된다면 땅을 치고 흥분하지 않겠는가? 현대 시대에는 커피라는 식품은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식품을 넘어 문화가 되었다. 과거에는 목숨을 걸고 커피 나무를 훔쳐서 보급하고자 노력한 모습이 흥미롭다. 과거 한국의 문익점과 유사하다. 목화씨를 훔쳐서 후대에 기여를 했다면 커피 나무를 훔쳐서 그 당시는 금전적인 이득을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세상의 보통 사람들의 혓바닥의 행복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 한 잔이 누구의 뜨거웠던 열정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고 즐겨보는 하루가 되면 어떨까?